2016_08
27
(Sat)10:33

멀쩡하던 남편이 숨졌는데… 경찰보다 장례업체에 먼저 전화한 아내

국내 최초 '니코틴 살인' 혐의로 구속된 男女에겐 무슨 일이

빈소도 안 차리고 화장
감기 한번 안 걸리던 남편 갈빗집서 외식한 후 3시간여만에 시신으로…
바로 남편 아파트 처분… 사망 보험금까지 청구해

수상한 '내연남'의 등장
남편보다 더 자주 통화… 1주일에 5일 만나고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는데 "사업 파트너일뿐" 주장 퇴직금 정산 때도 동행

남자가 中서 니코틴 구입
담배 끊으려 샀다지만 전자담배 파이프도 없어
경찰 "유죄 판결 자신" 독극물 니코틴 관리 '구멍'

경기 남양주경찰서는 니코틴으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주부 S(47)씨와 그녀의 내연남 H(46)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니코틴 살인'은 국내에서 처음 벌어진 사건이다.

건강한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

숨 진 남편 오모(53)씨는 충남 천안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설비 운반 등 주로 힘쓰는 일을 많이 했고 몸도 건강했다. 직장 동료는 오씨를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체질을 가졌고 아주 검소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월급 300만~400만원을 꼬박꼬박 저축했던 오씨는 천안과 남양주에 각각 아파트 1채씩과 현금 자산 4억원 등 10억원가량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래전 부모가 사망하고 형제도 없었던 오씨는 마흔여섯 살이던 2009년 결혼 정보 회사 소개로 S씨를 사귀게 됐다. 2000년 첫 남편과 이혼한 S씨는 10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둘은 이듬해 남양주 도농동의 30평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동거를 시작했다. S씨가 전 남편이 키우고 있던 딸 둘을 데려오면서 오씨의 가족은 모두 4명이 됐다.

오씨는 주중엔 집에 없었다. 천안에 직장이 있다 보니 주말 부부인 셈이었다. 부부는 동거 6년 만인 올해 2월 동사무소에 혼인 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사건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4월 22일 발생했다. 그날 집 근처 한 갈빗집에서 외식을 한 부부는 저녁 7시 30분쯤 집으로 왔다. 하지만 11시 10분쯤 S씨는 경찰에 "남편이 숨졌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외상이 전혀 없는 오씨가 숨지자 부검을 의뢰했고, 부검을 마친 다음 날 S씨는 남편 시신을 화장(火葬)했다. 이어 S씨는 남편 명의의 아파트를 처분했고, 남편이 가입해뒀던 사망 보험금(8000만원)도 보험사에 청구했다. 재산 상속을 요구할 직계 가족이 없던 남편의 재산은 아내에게 모두 넘어가게 됐다.

아내의 수상한 행적과 내연남의 등장

지 난 5월 중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뜻밖의 부검 결과가 남양주서에 전달됐다. 사망 당시 오씨의 혈중 니코틴 농도가 1.95㎎/L였으며, 수면제로 사용되는 향정신성 의약품 졸피뎀도 검출됐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니코틴 농도 1.4㎎/L로도 사망한 사례가 있다면서 니코틴 독살(毒殺) 가능성을 알려 왔다. 오씨가 비흡연자이고 그 수준의 니코틴이 체내에 있었다면 정상 활동이 전혀 불가능한데 불과 몇 시간 전에 외식한 것을 보면 사망 직전 신체에 다량의 니코틴이 주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은 바빠졌다. 단순 사망으로 종결될 뻔했던 사건은 강력팀에 재배당됐다. 그리고 숨진 오씨와 아내 S씨 주변에 대한 광범위한 탐문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수사망에 걸려든 인물이 H씨였다. 아내의 통화 내역 등 동선(動線) 조사 과정에서 지난 2년간 남편보다 더 자주 통화하고 접촉했던 남자가 H씨였던 것이다. S씨는 주말엔 남편과 있었지만 남편이 천안에 가있는 주중엔 H씨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파악됐다. S씨는 2년 전부터 남양주 별내동 인근에 임대아파트를 빌렸는데, 주로 H씨와 만나는 장소로 이용됐다. 미혼이었던 H씨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직업은 없었고, 수년 전부터 마카오와 필리핀 카지노 주변에서 관광객 등을 상대로 환전 업무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경찰 조사에서 내연 관계를 부정했다. 사업 파트너라는 것이다. 두 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일주일에 5일간 임대아파트에서 만나는 광경이 CCTV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됐는데도 이들은 "동업자일 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죽은 남편의 회사에 찾아가 퇴직금을 정산할 때도 아내 S씨는 H씨와 동행했고, 사건 직후 남편 통장에서 1억3000만원을 인출해 이 중 1억500만원을 H씨에게 주기도 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두 사람을 강력한 용의자로 추정했다.

사 건 당일 밤 아내의 수상한 행적도 포착됐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병원이나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먼저 장례업체에 전화를 걸었던 것. 장례 절차를 물어보는 S씨에게 업체는 "우선 경찰에 먼저 신고하고 정상적인 사망 확인이 돼야 장례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고, 그 말을 듣고서야 S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S씨는 부검 직후 남편 장례를 치를 때도 주변 사람에게 부고(訃告)를 알리지 않았고 빈소도 차리지 않은 채 곧바로 화장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이런 정황들은 이 사건의 심증만 더해줄 뿐 물증은 될 수 없었다. 수사팀에 가장 절실한 것은 살인 도구로 추정된 니코틴과 관련된 증거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니코틴을 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통화 내역과 카드 사용 내역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난 1년간 누구와 무슨 통화를 했고,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수사가 한동안 계속됐다"고 했다. 이런 광범위한 잠행(潛行) 수사가 이뤄지는 줄 몰랐던 S씨는 남편 재산 상속 작업을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었다.

中서 니코틴 구매 확인…사건 급반전

난 관에 봉착하는 듯했던 사건은 지난달 H씨 아버지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H씨가 사건 발생 보름 전인 4월 초 인터넷을 통해 중국 상하이의 한 업체에서 순도 99%짜리 니코틴 원액 10mL짜리 두 병을 구매했고, 그 대금 49달러를 아버지 신용카드로 결제했던 것이다. 상하이에서 국제 우편을 통해 날아온 니코틴 원액 두 병이 살인 사건 일주일 전에 S씨 임대아파트에 도착했고, 물품 수령자가 H씨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국내 업체에서 판매되는 니코틴은 순도가 낮아 살인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래서 중국에서 물건을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내 S씨의 수상한 행적과 H씨의 니코틴 구매 기록 등을 확인한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17일과 18일 S씨와 H씨를 각각 붙잡았다.

S씨는 당시 필리핀으로 출국하려고 인천공항에 갔다가 출국이 금지된 사실을 알고 귀가했다가 수사관들에게 붙잡혔다. 또 필리핀에 체류했던 H씨는 자신의 부모 집이 압수 수색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국내에 들어왔다가 수사팀에 검거됐다.

두 사람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됐으나 여전히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H씨는 흡연량을 줄이고 전자담배를 피우기 위해 니코틴을 구매했다는 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전자담배를 피우려고 니코틴을 구입했다는 H씨는 전자담배 파이프도 갖고 있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상하이에서 구입한 니코틴 원액은 '내다 버렸다'는 진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S씨도 "사건 당일 남편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수면제를 주긴 했지만 니코틴은 전혀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니코틴 원액이 숨진 오씨 몸에 유입되는 그날 밤의 순간을 완벽하게 재현하진 못했으나 지금까지 확보된 정황만으로도 법원에서 충분히 유죄가 나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니코틴 중독이 죽음의 원인이고 살인 동기가 충분하다면 피의자 혐의 부인 등으로 니코틴 주입 방법을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법원은 유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고, 대법원의 한 판사는 "내연남이 니코틴 원액 사용처에 대한 객관적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무조건 혐의를 부인한다면 오히려 재판 결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소설 속 니코틴 살인이 현실로

니코틴 살인은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지만 추리소설이나 추리만화 등에선 니코틴 원액을 이용한 살인이 자주 등장한다. 일본 추리소설 '잠자는 숲'과 일본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등에선 등장인물들이 니코틴 농축액으로 살해당하는 장면이 언급되고 있다. 대표적인 담배 유해물질 중 하나인 니코틴은 독성이 강해 살충제 용도로 가공되기도 하며, 담배를 처음 피우거나 많이 피울 때 나타나는 현기증과 구토 증상 등도 니코틴으로 인한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담배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니코틴은 몸에 100% 흡수되지 않거나 간이 걸러내 흡연이 곧바로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주사나 음용 등의 방법으로 갑자기 많은 니코틴 원액이 체내에 유입되면 혈압이 높아지고 호흡이 마비되면서 사망에 이르는 맹독성 물질로 바뀌는 것이다. 지난해 3월에도 집에서 자다가 숨진 20대 남성을 부검한 결과 니코틴 중독이 사인으로 추정되는 국과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 남성의 침대에선 농도 99%짜리 니코틴 원액이 든 갈색 병이 발견됐다.

니코틴 원액은 유해 화학 물질로 분류돼 허가를 받고 제조·유통할 수 있으며 구매자가 누구인지 기록해야 하지만, 전자담배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각종 향과 희석된 니코틴 원액이 혼합된 니코틴 액상이 별다른 제재 없이 유통되고 있다. 또 순도 높은 니코틴 원액을 사려고 마음먹으면 누구든지 인터넷을 통한 국제 거래가 가능해 사실상 니코틴 원액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많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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